- Anything/Crossover

[Crossover/칸로저스] Possibility of Loneliness

Jade E. Sauniere 2014. 4. 27. 21:40

- Star Trek Into Darkness & Captain America : The Winter Soldier Crossover

- Khan Noonien Singh & Steve Rogers

- Written by. Jade





Possibility of Loneliness

 

 

  중앙을 기점으로 세 갈래 길이 나왔을 때, 로저스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왼쪽을 맡겠다고 했다. 그가 잽싸게 왼편으로 사라지자 남은 인원은 재량껏 오른쪽과 직선 통로로 흩어졌다. 메인 시스템이 작동시킨 비상등이 붉은색으로 번쩍거리는 통에 복도는 캄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망자에게 썩 협조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에 그러했듯이 로저스는 자신이 추격하고 있는 자를 잘 알지 못했다. 보통은 이러이러한 해로운 단체에 속해 있고, 과거에 이런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니 참고하여 신중을 기하라는 부가 설명이 따라오기 마련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로저스는 힐이 제공해준 자료를 통해 얼굴과 이름을 겨우 확인했을 뿐이었다. 로저스가 판단하기에 도망자는 얼굴만 봐서는 국적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더불어 그는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로저스에게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직감까지 안겨 주었다. 

 

  로저스는 빨간 복도를 달렸다. 등에 단단히 맨 방패는 그가 뛰는 속도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좌우로 움직이는 건 목표물을 수색하는 로저스의 두 눈동자였다.

 

  —혹시 그가 어디서 도망쳤는지는 알 수 있습니까?

  —네?

  —출발점을 안다면 어디서부터 추적하는 게 좋을지 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미안해요, 제 영역 밖이라 저도 알기 힘듭니다.

 

  로저스가 곱씹고 있는 힐의 목소리는 그의 머릿속에서만 울리고 있었다. 그의 귓가에는 오래 전부터 바람 지나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로저스는 막혀 있는 벽이 나타나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그는 이 구역을 처음 밟고 있었다. 아무도 밝은 양지가 어울리는 그에게 건물의 으슥한 귀퉁이를 소개해주지 않았다. 로저스는 처음 보는 길을 스스로 뚫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로저스는 다시 한 번 통신 전파를 잡아보려고 귀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노이즈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이곳은 쉴드의 헤드쿼터 건물이었다. 통신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는 이상 작전실과 연결이 끊길 리가 없었다. 로저스는 고개를 내젓고 빈 통로를 날카롭게 살폈다. 유독 갈라지는 길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로저스는 망설이지 않고 한 길을 선택했다.

 

  새로운 코너로 접어든 순간 로저스는 앞이 어두워진 걸 느꼈다. 붉은 빛이 사라졌다. 

 

  —영역 밖이라고요?

  —국장님이 직접 관리해 오신 사항에 대해서 저는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로저스는 힐도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던 은밀한 비밀을 보고 있었다. 혹은 직감의 근원을 보고 있었다. 경보 시스템마저 아득히 멀어진 어느 공간에서 검은 머리의 도망자가 무기 하나 쥐지 않은 채로 로저스를 마주했다. 로저스는 조심스럽게 귓구멍을 막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냈다. 그는 도망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힐에게 들었던 이름을 생각해내려고 했다. 도망자의 이름은 흔했다. 그러니까….

 

  “아니.”

 

  로저스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도망자는 로저스의 뒤편을 힐끗 살핀 뒤 손가락을 움직였다. 로저스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키패드가 튀어나왔다. 

 

  “옳지도 않은 걸 애써 기억해내려 할 필요는 없지.”

  “…무슨 소릴 하는 건가?”

  “그쪽에선 어차피 내 가명을 알려줬을 테니까.”

 

  로저스는 도망자가 어떻게 자신의 머릿속에 짧게 지나간 고민을 간파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도망자가 하는 모든 말에 설득력이 깃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로저스는 가만히 도망자를 바라보았다. 도망자는 건장한 체격을 과시하고 있었지만 비무장 상태였다. 로저스는 일단 자신의 방패는 계속 등 뒤에 꽂아두기로 했다.

 

  “당신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보아하니 여기를 빠져나가려는 것 같군.”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렇게 놔둘 수는 없네.”

 

  도망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키패드를 만지고 있었다. 긴 다섯 개의 손가락이 몇 초 동안 계속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도 아직 작업할 게 남은 모양이었다. 로저스가 그에게 다가갔다. 도망자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곧 로저스의 손에 도망자의 팔목이 잡혔다.

 

  그 순간 로저스는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저스는 도망자가 반쯤 등지고 있는 까만 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정말이지 벽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로저스는 그 뒤에 차가운 공기가 돌아다니는 공동이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어울릴 듯한 은색 실루엣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는 그곳이 도망자가 목표로 하는 지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도 캡틴Captain이라던데.”

 

  로저스는 더 이상 남자를 도망자로 칭하지 못했다. 비로소 기억난 이름은 남자가 가짜라고 못 박아서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저편으로 가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지.”

 

  로저스가 남자의 팔목을 들어 키패드에서 떼어놓았다.

 

  “혹시 당신… 나보다 앞선 인물인가? 원래 내 자리는 당신이 맡기로 되어 있었나?”

  “내 말을 그런 식으로 알아들었다니 의외로군.”

  “쉴드에 나 말고 다른 캡틴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 하지만 당신은 방금 당신 역시 캡틴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듯이 말했잖나.”

  “그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그를 믿고 따르는 선원이 있다는 거지. 한 나라의 마스코트에게 붙는 별명이 아니야.”

 

  동료가 아닌 선원이라는 표현이 낯설었다. 사실은 남자가 구사하는 악센트라든가, 손에 쥔 팔목에서 느껴지는 급격한 체온 변화 등 모든 게 미심쩍고 이상했다. 다만 로저스는 그 무엇보다 남자의 본명을 자연스럽게 떠올린 자신을 제일 수상하게 여기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로마노프 요원, 내 말 들립니까?

 

  로저스와 정 반대방향으로 달려 나가고 있던 로마노프는 힐의 부름을 들었다.

 

  “이제야 회선이 복구된 거예요?”

  —이거 돌려놓는 데에도 진땀 뺐습니다. 그건 그렇고 잘 들어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캡틴이 갔던 왼쪽으로 가요. 그 다음부터 방향을 알려주도록 할게요.

  “거기 있대요? 아니, 근데 그렇다면 내가 굳이 갈 필요가 없잖아요. 로저스가 거기 있을 텐데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가요?”

  —아뇨. 캡틴이 그를 만나면 안 되는 상황이죠.

 

  로마노프는 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본래 의문을 가지는 걸 거추장스러워했지만 이번만큼은 질문을 꺼내야 했다.

 

  “대체 캡틴과 그 존 해리슨이라는 자가 무슨 관계인데 그러죠?”

 

 

 

⁂ 

 

 

 

  고요했던 복도에 툭 하고 사이렌 소리가 떨어졌다. 경보음은 곧 커지면서 간격을 좁혀갔고, 얼마간 물러나 있던 붉은빛도 슬금슬금 어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앙 시스템에서 비껴나 있던 이 구역에도 본부의 탐색망이 뻗쳐오고 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 로저스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칸, 잠깐…!”

  

  로저스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가르쳐준 적 없는 남자의 본명이 흘러나왔다. 

 

  “한 가지 진실을 말해주지, 캡틴.”

 

  아슬아슬하게 로저스의 양옆을 빗나가고 있던 남자의 눈길이 로저스의 눈앞에 바로 꽂혔다.

 

  “내가 당신에게 누군가를 잃은 슬픔에 더해 생존의 안정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무슨 뜻이지? 내가 살아 있는 것에 당신이 도움이라도 줬다는 뜻인가?”

 

  “그 정도로 뿌리 깊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아무도 여기까지 오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찰나의 고민도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당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당신이 내 생명의 은인이라면… 여기서 가짜 이름까지 뒤집어 써가면서 갇혀 있었을 이유가 없어.”

 

  “질문이 많군.”

 

  칸이 로저스에게 잡혀 있는 팔목을 조금 움직였다. 움찔한 로저스가 더욱 세게 그를 붙잡았다.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내 행동이 어째서 정당한지도 깨달았을 줄 알았는데.”

 

  칸이 쉬고 있던 다른 쪽 팔을 들었다. 벽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강력한 기류가 몰아쳤다. 세찬 바람이 지배한 로저스의 양 고막에 그를 부르는 로마노프나 힐의 외침은 전달될 수 없었다. 로저스는 매정하게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칸의 팔목을 잡고 있던 손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고개를 움직였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그의 피부가 묻어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면 그보다 더욱 깊고 강력한, 이를테면 칸의 살갗과 감정이 언제부턴가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챈 느낌이기도 했다.

 

  “로저스!”

 

  로마노프는 그렇게 외치면서 총을 꺼내들었다. 로저스는 제 자리에서 얼굴만 살짝 돌리면 될 것을, 마치 로마노프를 방해할 속셈인 것처럼 몸도 조금 움직여 서서히 닫히고 있는 문의 틈 일부를 가렸다. 게다가 로저스는 로마노프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로저스는 그 순간 엉뚱한 생각을 했다. 자신이 그의 이름을 늦게나마 깨우쳤지만, 그는 스티브 로저스를 알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왜 한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 복수적(複數的)인 표현을 사용했을까? 로저스의 이름을 날쌔게 낚아챈 로마노프가 그를 대신해 칸을 쫓았다. 

 

  로저스는 역광에 가려진 칸의 실루엣을 망막 뒤편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어도 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채울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을 때 인간은 고독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냉담해진 칸의 발자국이 로저스의 온몸에 뚜렷이 남았다. 로저스는 외로워진 함장의 그림자를 쫓지 않았다.

 

 

 

 




Original Sound Track of 'Captain America : The Winter Solider'

End of the 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