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Histories/리처드3세] Deadly Coronation of Richard
- For Richard Ⅲ, upcoming series of The Hollow Crown
- 2014/04/12
- Written by. Jade
Deadly Coronation of Richard
작가는 뒤늦게 덧붙였다. 그에게는 사실 굉장한 악역이 필요했었다.
그와 연배가 비슷한 젊은 청년이 고귀한 깃펜을 휘날려 창조한 인물은, 천사의 날개자락을 닮은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고만장하게 무대 위를 날뛰었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심장도 건너다니는 바람에 발생했다. 끝없이 악독한 성정을 내세운 주인공과 극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걸 보고 작가는 고민했다. 반반한 호수가 흐르는 마을에서 조금은 여유롭지 않게 태어난 작가이지만 그에게 경쟁 심리라든가 야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작가는 자신이 펜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넌덜머리가 나는 악당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뒤이은 질문에 작가는 입술을 이리저리 오므리면서 대답했다. 자신이 이태까지 집필해온 작품을 돌아본 뒤에 상상 속 필사본들에 파묻혀 보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붉은 그림자가 단박에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에게도 익숙한 리처드라는 이름을 가진 그를 작가는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가는 여기서 질문자가 혹시 자신이 리처드 3세를 종이에 옮긴 게 오직 외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을 염려하여 덧붙였다. 크리스토퍼의 인기와 그가 쓰던 역사극의 전통보다 더 강렬한 무엇인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작가의 입가를 빙글빙글 돌다가 끝내 터져 나왔다. 작가는 리처드들만이 공유했던 것 같은 기묘한 왕관에 매혹을 느꼈다고 말했다.
"리처드라는 이름으로 처음 왕관을 머리에 쓴 이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요. 모랫바람 일렁이는 곳에서 사자 같은 심장을 자랑하던 남자 아니었습니까. 유럽인도 아니고 저 멀리 있는 무슬림들이 그에게 멋들어진 별칭을 지어줄 정도로 그는 용맹한 왕이었습니다. 물론 헨리 3세가 아니라 리처드 1세가 되었던 그의 지난 길이 모조리 황금과 도덕적인 승전보로 반짝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리처드가 자신의 아버지 헨리를 거꾸러뜨린 걸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 리처드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했다는 것, 아버지가 그럴 만한 명분을 주었다는 것, 자신의 아버지가 총애한 동생이 자신보다 뒤떨어진다는 걸 똑똑히 알 수 있었던 총명한 시야 같은 요소들은 엄밀히 말해 죄악은 아니지 않습니까."
"종종 그 둘의 싸움을 일종의 경쟁으로 보기도 하지요. 늙고 젊은 사자들이 꼬리를 휘두르고 이빨을 번뜩였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때 리처드라는 이름에는 이미 원죄가 덧입혀졌는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서 어찌 신을 탓하리오. 리처드는 리처드가 아니라 헨리로 남아 있는 게 엄격히 따지면 옳은 일이니 말입니다. 두 번째 리처드에 관해서 한 번 얘기해 볼까요. 그는 정통성만으로 왕위에 오른 자입니다. 평화로운 대관식을 치렀지요. 그런데 그는 왕관을 쓸 수 있는 자신의 머리가 바깥으로 달아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헨리에게 그 빛나는 타원을 넘겨줘야 했습니다."
"헨리의 봉기에도 나름의 명분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헨리의 뜻만 있었다면 왕위 찬탈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작가의 언어는 자주 다른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 작가는 이번에도 부지런히 자신의 말을 받아 적는 타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가장 명망 높은 리처드마저 아버지에게 반항해 왕관을 빼앗았다는 것은, 왕관을 빼앗기지 않을 수도 있었던 두 번째 리처드에게 영향을 미쳐 헨리의 발 앞으로 왕관을 굴리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세 번째 리처드는 앞서 존재했던 두 명의 리처드들이 가졌던 흠만을 모아 대관식을 치른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과 같은 핏줄에 반대했고 런던탑과 사형장을 애용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신이 리처드들만을 콕 집어서 그들을 미워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헨리들이 저지른 죄도 큽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조국의 역사가 헨리의 편을 들어 그들에게 좋은 걸 많이 주었지 않습니까. 가령 가시 돋친 두 장미를 어루만지게 하는 역할 말입니다. 리처드 1세의 위대한 별명은 건조한 사막의 바람을 타고 온 것이므로 조국의 역사가 주었다고 할 수는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리처드 3세를 소재로 삼으신 것은 첫째는 악역을 필두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던 크리스토퍼의 전례 때문이며, 둘째는 사극이라는 흐름을 지키기 위함이며, 셋째는 단 셋밖에 되지 않는 리처드들의 기묘한 운명 때문이라는 것이군요."
"그런 이들이 잉크를 흡수하기에는 더 제격입니다. 리처드 2세 같은 인물만이 이마에 맞추기 위한 왕관의 구멍이 너무도 크고 텅 비었다는 걸 지적할 수 있고, 또 리처드 3세 같은 인물이 증오와 악행이 가져다주는 불안한 미학을 살리기에 적절하지요."
작가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인간을 일깨워주는 것에 오로지 희망한 계몽의 빛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 리처드가 필요한 사람이 저밖에 없기야 하겠습니까."
작가가 길게 늘어놓은 말을 정리해 옮겨 적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의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만 났다. 작가는 대답만 하던 입장을 바꾸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글로스터가 무대에 오른 걸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기록 없이도 명성은 오래 간다는 리처드의 말을 기억하십니까?"
"어린 왕자가 예리한 진리를 짚어낸 자신의 총명함에 놀란 리처드의 혼잣말에 대해 물었더니, 리처드가 적당히 둘러댄 대답 아닙니까?"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말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리처드의 말은 자주 두 가지 의미를 띠곤 했지요."
"그게 무엇입니까?"
"도덕적 성향Character 없이도 명성은 오래 간다. 적어도 제가 써내려간 국왕에겐 썩 잘 어울리는 표현 아니겠습니까? 저의 리처드라면 아마 여기에 대해서 냉소를 지었을지는 모르나 언짢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작가는 말하다가 우연히 남자가 채우고 있는 종이를 보게 되었다. 리처드Richard로 시작하는 문장이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종이 가득히 리처드였다. 자신이 그에게 부추겼던 온갖 악행의 흔적 없이도 리처드는 오롯이 누군가의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1세기를 넘어서도 회자되었으면 그 뒤 2세기, 3세기를 내다보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세상으로부터 별달리 이득을 받은 게 없던 그라면 이 또한 멋진 간계라면서 만족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