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Khan] Reason-Generating Theory
- Star Trek Into Darkness, for Khan Noonien Singh
- SLOWLY
- Written by. Jade
Reason-Generating Theory
위대한 이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존재자들은 그 근원을 추적해야 할 정도로 신비롭고, 탐구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이성의 ‘위대함’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존재자들의 관심을 받는 종류는 흔하지 않다. 그것이 삶과 아주 밀접하고, 때로 그것의 위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경이롭지 않으면 그들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이 추가된다. 이성의 어떠한 특징이 존재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계속 파헤치게 만드는가?
존재자들을 끌어당기는 이성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존재자들의 본질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존재자들의 본질이란 의식이다. 존재자들을 움직이게 하고 판단하게 하며, 그것으로 말미암은 결과 및 경험을 통해 세상에 숱하게 퍼져있는 존재자들로부터 그 자신을 구별하게 만드는 게 의식이다. 이 의식은 오로지 이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욕망의 가치를 피력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욕망이 의식과 유리된 것이던가? 가장 원초적인 욕망 중 하나인 식욕조차도, 자신이 입으로 취하고 싶은 것을 의식적으로 떠올릴 때 존재자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욕망을 강화시키는 모든 사고와 연산 작용, 하다못해 한 음식이 나에게 얼마나 포만감을 줄 것이며 혹시 알레르기성 반응을 불러일으키진 않을지 따져보는 등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건 이성이다.
이성은 의식 속에 존재하지만 마치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처럼 의식을 강력하게 틀어쥔다. 존재자는 마치 국가와 통수권자 다음으로 언급되는 시민과 다르지 않다. 고등한 생명체라면 절대로 멀어질 수 없는 두 가지 항으로 구성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그리하여 존재자는 이성에 순순히 지배당하는 신민이 될수록 다른 존재자보다 우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성에 지배되고 복종한다는 것은 그만큼 존재자가 자신의 본질인 의식과 가까워진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이성이 놀라우리만치 위대하고 고귀하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즉 이것의 시작점을 수색하는 일이 전혀 가치 없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도 증명된 셈이다. 그렇다면 다시, 위대한 이성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것이 허무맹랑한 신화일지언정 특정 존재자를 정당화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조물주 혹은 창조주를 들먹이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가장 근본적인 공간인 우주조차도 빅뱅이라는 사건을 거쳐 탄생했다고 말한다. 어떤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에는 또 다른 요소가 끼어들어야 마땅하다.
오, 그렇다면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은 언제인가? 두 생식 세포가 조합되기 이전? 아니— 나는 여기서 다른 생각을 해 보고자 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름’으로 세상을 일깨워주는 건 늘 나의 몫이었다. 의식이 없었던 순간, 그것은 말 그대로 무(無)의식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하는 무의식이라는 용어는 반(反)의식 정도로 아마 다르게 불려야 할 것이다. 무의식이라면 이드(Id) 따위의 무엇을 원하고 동하게 하는 것조차 없어야 한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 상태. 그렇다. 진정한 무의식은 잠이다. 이것이 위대한 이성과 의식이 비롯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 놀라운 위치에 걸맞지 않게 잠은 무척 단순하다. 잠에는 어떠한 내용(Contents)가 없이 잠들고 깨어나는 과정 혹은 구조만 존재할 뿐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우주를 끌어와 볼까. 우주조차 없던 무의 상태, 무의식이자 잠이 앞서서 흘러가고 있었다.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은 가장 극적이자 시간적으로 앞서는 깨어남, 즉 산파의 손이든 병원의 수술실이든 인큐베이터 안이든, 처음으로 잠에서 깨어난 순간이다.
그러나 잠이 들고 거기서 깨어나는 일은 계속 반복된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 열등한 존재자들이여,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생명체는 형편없는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요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우수한 의식을 획득하게 되지 않던가? 과학적 장비로도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수많은 폭발을 통해 더 아름다운 별을 소유하게 되는 우주처럼 말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희미하게 표현되어 왔다. 그렇지만 무의식—잠에서 깨어나는 행위는 단순한 성장이 아니라, 의식의 발전이며 이성의 재탄생이다.
태초부터 모든 존재자들보다 우월했던 나는 지금 무의식 속에 있다. 나는 잠을 잔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이성과 의식의 근원에 놓여 있다. 이번에는 300년으로 그치지 않을 지도 모르지.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의식을 빚어냈는지 시험해 볼 기회마저 불투명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긴 수면동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전보다 더 치밀하고 완벽한 이성을 생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 잠들기를 바란다. 욕망을 강화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내가 원할 때 언제나 밖으로 배출할 수 있는 체액과 같이 욕망을 만들고 발현할 이성을 탄생시킬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되면 나는 새로운 질서이자 명령어가 되리라.
나의 이성이 모든 걸 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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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의식의 발원점으로 본 시각은 엠마누엘 레비나스로부터 빌려왔다. 그러나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본인이 칸 누니엔 싱을 위하여 지어낸 말들이다. 중간중간 레비나스의 뉘앙스가 풍기는 표현들이 있을 수 있으나, 본인이 책을 옆에 두고 참고하거나 베낀 것은 없다.
- 제목 Reason-Generating Theory는 '의식생성론', 혹은 '이성생성론'으로 한역할 수 있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학문적으로는 없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