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Full-length

[STID/존본즈] History of Independence 04

Jade E. Sauniere 2014. 3. 14. 13:55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대단원 2. 센티넬의 복수 

04. 두 가지 발견 



  진화전쟁에서 사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센티넬들의 전격적인 폭주였고 인간에겐 이길 수 없는 재앙 같았던 4개월이 지난 뒤 있었던 2년 8개월간의 휴전기이다. 전선의 이동이나 국지전도 없었던 시기였지만 인간과 센티넬 모두 속으로는 거대한 변화를 겪은 터닝 포인트였다.


  먼저 센티넬 진영이다. 칸은 독일에 있는 막스 플랭크 종합 연구소에 정착해 ‘유사-가이드 관계(Half-Guide Relationship)’를 정립했다. 칸이 그러한 통찰을 이뤄내지만 않았더라도 센티넬들이 붕괴되어 가는 정신을 이기지 못해 자멸했을 거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니 그 역사적 위력을 알 만하다. 


  칸은 골턴 연구소에 있던 시절부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효력이 있는 안전 스위치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인간들을 향한 복수도 중요했고 그로서는 전쟁을 일으킬 충분한 명분이었겠지만, 연구소 바깥으로 나가서 자신과 동족들을 다독여줄 수 있는 믿음직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인류가 목덜미를 붙잡고 벌벌 떠는 동안 그는 두 가지 종류의 실패를 경험한 꼴이 되었다. 연구소 밖에도 가이드는 없었고 폭력을 통한 스트레스의 해소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서 그는 강화인간이라는 종을 뿌리부터 파헤치기로 한 것이다. 그가 선택한 곳은 20여개의 분과를 가진 유럽 최대의 연구소 중 하나였다. 강화인간들은 거기서 칸의 지시에 따라 피실험체가 아닌 학자로 거듭났다. 기록물을 남길 필요가 없는 센티넬들의 우수한 두뇌 덕에 자세한 자료가 남아있진 않으나, 레비나스 맥코이가 칸과 접촉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밝혀내려고 한 유사-가이드 관계의 메커니즘은 아래와 같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결국 유사-가이드 관계의 핵심은 칸을 제외한 모든 센티넬들이 칸을 가이드라고 인식하는 거다. 연구소에 있으면서 센티넬들은 마치 파일을 다운로드해 저장하듯이 칸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인식 회로를 형성했다. 여기서 센티넬들이 골라 담아야 하는 자료의 키워드는 칸의 존재 자체다. 즉 유사-가이드 관계에는 실제로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에 생겨날 법한 정신적인 유대나 공감대가 아닌, 단 하나의 존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고 시스템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시스템은 동족들의 세포 하나하나에 유전적 정보 형태로 주입되었다고 한다. 유사-가이드 관계를‘동류의식을 이용한 유전공학적 조율’이라고 요약했던 칸의 한 마디는 그 때문에 여전히 권위 있는 표현으로 인정받고 있다.


  여하튼 두려울 만큼 영리한 리더를 필두로 강화인간들이 얻어낸 결실은 다시금 인류를 소름 돋게 했다. 휴전기 이후 벌어진 전투들에서 센티넬들은 불필요한 사체 훼손을 줄여나갔으며 속성 훈련을 받은 것처럼 규율과 전술에 따라 행동했다. 센티넬들이 어느 정도는 평정을 되찾는 방법을 획득했다는 증거다. 


  다행히 인류도 2년 넘는 시간을 두 손 놓고 보내지는 않았다. 캐서린 헤이스팅스가 센티넬 스파이럴(Sentinel Spiral)을 발견하면서 인류는 희망을 얻었다. 이것 역시 전쟁 시기에는 없었던 용어이며 가이드라인(Guideline)과 대조를 구성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인간들은 숱하게 남은 시신의 손톱 밑에도 피부를 남기지 않았던 지라 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인류는 무식한 방법을 끌어들여야 했다. 연구원들은 목숨을 내놓고 전장에서 말라붙지 않은 혈흔을 있는 대로 모았다. 진화전쟁 4개월간 강화인간들은 전투 도중 생기는 상처마저 일종의 해소 작용으로 느꼈던 덕에 자잘한 생채기를 달고 다녔다. 어차피 자체적으로 치유되어 없어지는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단 한 방울의 피는 강화인간들에겐 몰라도 인류에겐 황금과 같았다. 그 다음 복잡한 분리 과정을 통해 채운 몇 개의 시험관은 헤이스팅스와 같은 최고의 인재들에게 보내져 연구에 활용되었다. 


  그런 척박한 역사를 거쳐 인류의 눈앞에 등장한 센티넬 스파이럴은 세포의 일종으로 센티넬들은 이것을 염색체 개수만큼 가지고 있다. 보통 인간에게 추출한 유전인자를 한데 융합해 강화시킨 것으로, 강화인간들만이 가진 DNA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가이드라인이 이름과 다르게 살짝 구부러진 모양인 반면 센티넬 스파이럴은 정말로 작은 소용돌이처럼 생겼다.


  헤이스팅스는 이것을 생화학전을 통해 공략하고자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헤이스팅스는 센티넬에게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특이점을 노리는 작전을 짰는데 그 타깃이 센티넬 스파이럴이 된 것이다. 기어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전에서 헤이스팅스의 발명품은 강화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를 무력화시켜 그들을 몸 안쪽에서부터 파괴시켰다. 


  한편 재판에 세우기 전 칸 누니엔 싱에 대한 신체 정밀 검사를 거쳤을 때, 그의 스파이럴 역시 10분 이내로 그의 몸이 붕괴될 수준으로 상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곧 그 10분 차이로 헤이스팅스와 인류가 센티넬을 멸종시키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혹자들은 그것이 헤이스팅스로 하여금 인류의 영웅이라든가 전장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매우 꺼리게 된 이유가 아닌가 추측한다. 헤이스팅스의 승리는 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헤이스팅스의 속내를 직접 들어봐도 좋을 듯하다.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나처럼 강화인간들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나를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누군가로 치켜세운다. 지구 어딘가에 센티넬들이 살아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칸이 유사-가이드 관계를, 헤이스팅스가 스파이럴 공략 작전을 완성한 뒤에도 그 두 가지 묘책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데 1년이 걸렸다. 휴전기가 끝나고 이어진 진화전쟁은 둘이 각자의 이론을 시험해 보는 크고 작은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인류의 피해는 여전히 막심했으나 강화인간들의 숫자도 하나 둘씩 줄어갔다.


  스파이럴을 발견한 덕에 헤이스팅스는 연구원 신분으로 군사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거기서 그녀는 인류가 가진 몇 안 되는 강점 중 하나가 숫자라고 지적하면서 100대 1의 비율로 아군과 적군의 병력량을 맞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선으로 떠밀린 병사들은 그래도 최후의 무기가 있다며 전보다는 사기가 증진된 모습으로 싸움에 임했고 강화인간들의 숫자가 하나 둘씩 줄게 되었다. 헤이스팅스는 그러면서 부검이 가능한 강화인간의 시신을 얻을 수 있길 바랐으나 그건 칸이 막았다. 인간에게 내줄 바에야 직접 동족의 사지를 조각내는 그의 냉혹함은 변함없이 사람들을 주춤거리게 했다.


  등 뒤에 저마다의 과학을 숨기고 충돌하는 동안에도 센티넬은 영토를 넓혀갔다. 발칸 반도를 노리는 것 같다가 기습적으로 흑해 주변을 장악하며 뒤통수를 치기도 했다. 유럽의 전역을 뺏기다시피 한 인류는 최종 방어선을 러시아 땅에 구축했다. 강화인간 다수를 시베리아 쪽으로 끌어들여 봉쇄시키겠다는 심산을 품고 있었던 듯한데, 예상과는 달리 진화전쟁의 종착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헤이스팅스는 갈수록 단단히 정비되어가는 강화인간들의 뒤편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을 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혈액 샘플을 모조리 소비해가며 자신의 약물이 효과가 있을 거라 자신하게 된 그녀는, 강화인간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민들은 모스크바로 대피시키고 도시에 약물을 퍼뜨렸다. 


  결과적으로 전쟁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입성 당시 70명이 넘었던 센티넬의 규모를 1/3까지 줄이고 만 인류의 승리였다. 그러나 인류는 칸 누니엔 싱이라는 기묘한 이름을 가진 강화인간 때문에 자만하지도 못하고 승자로서는 상당히 독특한 길을 가게 되었다.







  칸은 도시를 둘러싸고 자신을 막아선 벽을 보았다. 시각적인 루트를 통하지는 않았어도 그의 몸뚱아리가 그 투명한 장애물을 인식하고 있었다.


  강화인간들은 여간해선 죽지 않는다. 인간들이 자연적으로 세포를 재생하는 것보다 몇 백 배에 달하는 회복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필요 없을 정도의 민첩함과 날카로운 악력과 비범한 두뇌를 갖고 있다. 사상자가 나오기 시작한 최근까지도 강화인간들이 끊임없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태생적 특징이 버텨준 덕분이었다. 그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괴생명체이다. 


  그래서 칸은 만약 그들이 패배를 맞이한다면 이런 방식일 줄을 예감했다.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면서 라이플을 들고 있던 군인들이 서서히 뒷목을 폈다. 이태까지 인류의 재앙이었던 그들을 겨누던 총이 하나씩 밑으로 내려갔다. 군인들이 보기에도 이제 강화인간에게 검은 무기를 들이대는 건 소용없을 것 같았다. 칸이 살짝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어 있는 건물들인데도 출입구가 활짝 열려있었다. 강화인간들이 공기를 타고 흐르는 무시무시한 벽을 피할 곳은 남아 있지 않았다.


  칸은 이 시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선택했다.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필사적으로 섬겼던 동족들을 외면하고 천천히 전진했다. 놀란 군인들이 무기를 치켜드는 소리가 났다. 짧게 철컥거리는 소리일 뿐인데도 칸은 자신의 귓가가 사방으로 갈라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누군가를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근원적인 타격이었다. 


  캐서린은 무장한 병력들 뒤에서 작은 망원경으로 전장을 보고 있었다. 유독 쓰러지지 않는 인영이 약속장소를 살펴보는 것처럼 양 옆을 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캐서린은 적의 눈에 띌까 벗어 두었던 연구소 가운을 다시 걸쳤다. 열 명의 강화인간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들어온 지 고작 15분 만에 쓰려졌다. 캐서린은 자신이 몸을 사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면 쏴요.”


  캐서린이 하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강화인간을 이끌었던 수장의 정체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녀는 전쟁에서 칸을 만나면 꼭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내심 캐서린은 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칸은 시커먼 무리에서 튀어나온 백의의 지휘관을 보고 미소 지었다. 자신의 몸과 다르지 않은 동족들과, 진짜 그가 부리고 있는 육체가 패배감에 털썩이고 있는데 그의 미소는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당신을 본 적이 없었어, 캐서린.”


  칸의 말을 듣고 캐서린이 멈춰 섰다.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칸은 대꾸하지 않았다. 청각적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도 버거워 하는 육체가 깊은 곳에서부터 방향 없이 돌았다. 세포 하나하나에 전깃줄을 매달아 실험을 가하는 듯한 아픔이 여기저기에서 박동했다. 그 찰나만큼은 계산적인 의식도 없이 칸은 캐서린의 가운 자락을 보고 웃어버렸다. 쓸모는 없었어도 따뜻했던 오필리아의 온도가 옷이 흩날리는 모양대로 부서지는 것 같았다. 칸의 의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 캐서린은 그저 얼굴을 찡그렸다.


  “오필리아와 당신은 꽤나 잘 어울리는 짝이었겠군.”


  그러자 캐서린이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어렵게 물건의 정체를 알아본 칸이 비정상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그의 선택은 쉬운 길이었다.


  “연구소에 가 보니 그야말로 터만 남아있어서 이 명찰도 직접 만들어야 했어. 전쟁 통에도 주문을 받는 간 큰 장인들은 없었거든. 쉬는 시간마다 오필리아 이름을 새기면서 만들었지.”

  “칭찬을 해줘야겠군.”

  “뭐?”

  “복수와 그것을 바칠 대상을 두 손에 다 쥐고 있잖나.”


  캐서린이 자랑하듯 들고 있었던 오필리아의 명찰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칸의 사고는 달라진 점 없이 똑바로 구동하고 있는 것 같았고, 손끝 하나 떨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캐서린은 소매를 만지는 척하면서 시간을 체크했다.


  캐서린은 앞으로 10분을 더 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일단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


  “당신은 이게 다 오필리아를 위해 한 일이라고 생각하나보지?”

  “합당한 추측이다. 내가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다 가져갔지 않은가. 인간들은 소중한 걸 뺏기면 화를 낸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배워서 알겠네.”

  “내 목숨을 가져가겠다는 뜻이라면, 나는 당신이 복수를 달성했다는 말을 거둬들일 것이다.”


  캐서린은 금방이라도 소리를 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여기서 못 이겨.”

  “당신 입장에선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칸은 정말이지 캐서린의 약물에도 끄떡없는 것처럼 빠르게 대답을 뱉어냈다. 순간 캐서린은 다시 시계를 보려다가 손목을 쥐었다. 10분은 지나지 않았을 거였다. 3분 혹은 5분 정도는 흘렀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하면서도, 그보다 분침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면 캐서린은 자신의 확신을 깨끗하게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나가 떨어진 것 같군. 여기까지는 당신이 계산한 그림일 거야.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당신의 옷자락 밑에서 움찔대는 시계가 보여. 언제쯤이면 저 망할 괴물이 나동그라질지 재고 있는 건가?”


  총성 한번 들리지 않았는데 피 냄새와 비슷한 향이 도시에 조금씩 들어차고 있었다. 캐서린이 시선을 옮겼다. 신체를 구성하고 있던 요소가 완전히 끊어진 강화인간 하나가 주저앉은 상태로 체액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칸의 발 뒤로 느리게 나아가는데, 캐서린은 진심으로 동족의 일부를 밟고도 꼿꼿한 칸을 직시하고 싶지 않았다.


  “정 답답하면 총으로 쏴 버리면 돼.”


  날카롭게 내뱉는 말투를 꾸며내고자 애썼지만 캐서린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멈춰버린 심장을 스스로 살려내는 칸을 보고도 그녀는 총을 믿는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밀레이스를 죽인 나를 없애지 못하면 당신은 오늘의 승리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지.”


  칸은 지금 한 걸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을 전부 언어로 우회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유의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밀레이스를 죽였다고 해서 당신이 날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어.”


  목소리를 내면서 칸은 자신이 연구소를 파괴하던 날을 회상했다. 가운을 입은 여자가 있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게 많았으며 까만 인간들이 가득하다는 게 비슷했다. 그는 의식을 잃지 않고자 자신의 기억에 상상력을 덧입혔다. 칸은 캐서린 헤이스팅스를 품에 안고 총을 든 인간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칸은 기억하지 못했으나 그의 상상은 실제로 일어난 일과 차이점이 거의 없었다. 







  전쟁의 마지막에서 인류는 부상자 한 명 없이 강화인간들에게 승리를 얻어냈다. 칸을 포함한 24명이 무색무취의 포격에서 살아남아 전범으로 붙잡혔다. 인류는 이제 구제할 길 없는 잔혹한 강화인간들을 사형시켜버리면 모든 게 끝난다는 마음가짐으로 칸을 법원으로 떠밀었다. 물론 그 재판은 형식적이면서 인류의 위대함을 뽐내기 위한 이벤트처럼 진행될 예정이었다. 판사는 법전도 들고 오지 않았고 피고 측 변호사는 당연히 없었다. 


  칸은 사지를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지경까지 망가져 버린 동족들을 대표해 홀로 증인석에 섰다. 그러고는 혈혈단신 한창 자신들의 극적인 업적에 도취되어 있던 인간들의 뒤를 때렸다. 이 충격에서 제일 먼저 헤어난 인물이 레비나스 맥코이였고, 그의 주장을 필두로 가장 극악무도한 전범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막을 올렸다.  


  존재하는 학문들 중 제일 양심적인 과학이라고 평가받는 인간학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