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D/존본즈] History of Independence 01-2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Leonard McCoy
- Written by. Jade
대단원 1. 센티넬의 탄생
01. 센티넬의 시발점
밀레이스의 기록에 따르면 수면과 각성이 반복되던 1차시기만 하더라도 강화인간들은 가이드의 부재로 인한 이상 반응을 보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물론 밀레이스가 집중적으로 관찰한 대상이 하필 칸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첫 번째 각성부터 그는 동족들의 수장으로 낙점된 것처럼 모든 면모에서 비범했다. 밀레이스의 말을 들어보자.
케이트, 그는 정말이지 이상했어. 강화인간들을 만드는 데 사용된 근본적인 요소들은 연구소 내에서 전부 공유되었었는데 왜 그만 특별한 건지 나도 알 도리가 없었어. 다른 사람들은 단순히 그가 일찍 눈을 뜬 것, 다른 실험체들보다 매끈하고 아름다운 육체 등에 흥미를 가졌어. 그 사람들은 그가 한 말을 듣지 못했으니까. 깨어나자마자 자신의 위치를 인식한 강화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인간들이 가진 모종의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한 번에 파악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칸의 우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밀레이스가 좀 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짐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밀레이스는 자신의 강화인간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았다.
⁂
공평하게 할당된 방에 강화인간들을 보관해 놓고 과학자들은 휴게실에 모여 있었다. 보고서와 씨름을 하고 있는 박사들이 간간히 있긴 했으나 대부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오필리아와 멀지 않은 곳에서 귀를 세우고 있었다.
“무슨 이름을 줄지 생각해 봤어요?”
오필리아와 붙어 앉은 여자가 고개를 흔들거리며 물었다.
“지금은 워낙 바쁜 시기라서…. 차차 고민해봐야죠.”
“왠지 평범한 이름은 주기 미안할 것 같아요. 독일식이라든가, 라틴어에서 따오면 괜찮을 것 같아요. 더 나아가면 히브리어?”
그렇게 말하고 여자는 웃었다. 오필리아는 고부라지는 눈썹만 매만질 뿐이었다. 오필리아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학자들은 저마다 스케줄을 밝히며 언제 그녀의 강화인간을 구경할 수 있는지에 관해 수다를 떨었다.
오필리아는 잠깐 종이컵을 버리고 오려는 듯이 일어났다. 과학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오필리아가 아니라 그녀의 작품이었으므로 휴게실의 잡담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오필리아는 다시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필리아는 굳이 노크를 하지 않아도 열 수 있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기 전 시간을 체크했다. HFX-1500이 눈을 뜨고 8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오필리아는 그와 진지한 자세로 마주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훤칠하고 성과 좋은 샘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필리아가 목에 걸린 출입증으로 잠금장치를 풀었다. 문이 밀려나면서 벌어진 틈에는 빛이 없었다. 대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기다렸어.”
병실처럼, 혹은 독방처럼 꾸며진 텁텁한 방 안에 올곧게 허리를 편 피조물이 자신의 창조자를 맞이했다. 오필리아가 바깥에 한 발을 걸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얘기를 좀 해야겠어요.”
“얼마든지.”
하루도 채 살지 않은 강화인간은 벌써 예절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그런데 말이야, 오필리아.”
그에게 걸어가려던 오필리아는 순간 몸을 떨고 말았다. 그가 유심히 명찰을 보긴 했어도 설마 자신의 이름까지 발음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인재들이 모인 연구원에서 태어난 존재는 자신에게 알맞은 걸 선택한 마냥 오필리아의 영국식 발음을 따라했다.
“난 언제쯤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건가?”
강화인간은 슬며시 웃었다.
⁂
다수의 건의에 따라 HFX-1500의 각성 지속 기간이 5일로 늘어났다. 연장된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사지와 세포를 몽땅 내어주면서 연구원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먼저 깨어난 실험체들보다 우수한 그를 파헤치기 위해 휘날린 서류들은 다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표면적인 완벽함 그 이면의 근원을 파악하는 데 실패한 인간들은 하나 둘 고개를 내젓기 시작했고, 오필리아 밀레이스만이 자신의 창작물을 해석하길 단념한 채 메모를 끼적이고 있었다.
언어 교육을 받으면서 HFX-1500은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오필리아에겐 이미 익숙한 강화인간의 음성을 듣고 나머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발음이 정확하다는 둥, 목소리에 설득력이 있어 나중에 좋겠다는 둥 의견이 많았다. 그가 눈을 뜨고 연구소를 휘저었던 5일 내내 과학자들은 흥분했다.
강화인간들에게 제공된 방에는 침대와 이불이 있었다. 원한다면 잠을 청할 수도 있지만 그는 연구소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그는 과학자들의 책상과 인큐베이터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중앙 홀과도 같은 공간에 자주 나타났다. 그곳은 오필리아가 즐겨 눌러 앉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는 걸어 다니면서 발자국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덕택에 오필리아는 크고 긴 그림자가 자신의 책상을 덮자 깜짝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난 또 누구라고. 무슨 일이죠?”
HFX-1500은 말없이 오필리아가 쥐고 있던 펜을 뺏었다. 살짝 비뚤어진 모양으로 종이를 채우고 있던 글자들이 차례대로 지워졌다. 오필리아는 물끄러미 강화인간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한 번씩은 들어본 것 같은 남성 이름이 까만 잉크에 밀려나고 있었다.
오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동작을 집중해서 지켜봤다. 내쳐지는 이름들과 그나마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름들을 비교하면서, 오필리아는 서서히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이걸 갖고 싶은 거죠?”
펜을 뺏긴 오필리아는 손가락으로 단어 하나를 가리켰다. 강화인간이 미소를 띠며 긍정했다.
“어울리네요. 칸…이라.”
갓 태어난 손이 펜을 책상에 버렸다. 더불어 강화인간의 실루엣도 사라져 오필리아는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펜에 시선을 두었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게 아니라 그녀의 뒤로 자리를 옮겨갔을 뿐이었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닿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육체와 동떨어져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에 그치지 않고 크게 움직였다. 오필리아는 계속해서 강도를 달리 하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에 적절한 대응을 펼칠 수는 없었다. 그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지도 미지수인 전문적인 정보만을 떠안은 상태인 실험체의 독립적인 성장을 관조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과 그 성질이 비슷했다.
그녀가 빚어낸 청록색 동공이 시야 가득히 반짝거렸다. 오필리아는 그 빛이 너무 강해 눈을 감았다. 피조물은 익숙하게 창조자와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정말로 옷깃이 서로를 밀치면서 접촉하는 수준과 흡사한 스침이었다. 그래서 오필리아에게 입맞춤보다 더 선명했던 건 강화인간의 눈동자였다. 애정이라고 취급해 주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애매한 안구를 파헤치고자 오필리아는 인상을 찡그렸으나, 그녀는 자신의 추리에 오래 집중하지 못했다. 강화인간의 뜨겁고 차가운 피부가 오필리아의 얼굴과 귓가를 다 점령했다.
칸은 마음에 드는 이름을 준 것에 대한 답례라고 소곤거렸다.
⁂
정해진 것처럼 칸은 제일 먼저 인큐베이터와 작별했어. 사실 나는 그 전에 이미 역사적인 발전을 위해서 조금은 획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과거의 나와 헤어졌었지. 너였다면 나보다는 담대하게 그를 대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사실 지금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정말이지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내가 맡았던 인큐베이터 안에 그가 들어있게 된 걸까?
그런데 문제는 케이트, 내가 지금 반성하고 싶은 내 모습은 실험체의 손길에 이끌려서는 아무렇게나 휘둘렸던 때가 아니야. 그는 내가 여기에서 성취하기를 바랐던 가장 예술적인 결과물이야. 언제부턴가 나는 그의 앞에서는 그의 이름만 불렀어. 그가 나를 때때로 오필리아라고 불러주는 것처럼.
케이트, 내가 여기서 더 알아야 할 게 뭔지 알려줘. 나 혼자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아.
위는 밀레이스가 서서히 센티넬들이 인큐베이터에서 벗어날 즈음 헤이스팅스에게 보냈던 편지의 전문이다. 다른 학자들과 차별화되었던 밀레이스만의 시각은 결국 자신이 직접 만든 실험체를 경외하다가 나중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 밀레이스는 칸과 돌이킬 수 없는 행위까지 거친 듯하다.
헤이스팅스는 전쟁 후 맥코이의 인간학을 천천히 받아들이면서 먼저 밀레이스를 탐했다고 하는 칸의 태도를 가이드 개념을 접목시켜 풀이했다. 즉 칸이 밀레이스의 육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애정을 흘린 건 가이드를 수색하기 위한 센티넬의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는 거다.
센티넬은 가이드가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얻는다고 하지만,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등 서로의 피부가 맞닿는 면적이 클수록 그 안정감이 강화된다는 게 기본적인 가설이다. 칸은 꼭 밀레이스와 연인 관계인 듯이 접촉 수위를 높여갔는데 이는 가이드의 손길이 다급한 센티넬이 보일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다. 다만 그 시대에 가이드가 없었기에 칸의 시도는 실패했고 밀레이스는 칸의 행동을 오해했다. 이러니 칸과 유래 없는 밀착된 관계를 가졌던 밀레이스에게도 닥쳤던 비극도 크게 기이하지는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 연구소의 정책이 칸과 밀레이스의 뒤틀린 관계를 자아냈다는 주장 또한 가능하다. 밀레이스는 시종일관 편지에서 자신만이 피조물과 불건전한 관계를 맺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른 강화인간들과 칸의 수준을 완벽하게 달리 보았던 연구소가 그에게 각종 실험에 참여하라고 강요했을 테니 마땅히 그러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폭주를 막고자 필사적으로 가이드를 찾아 헤매야 했던 센티넬이 칸 혼자였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칸은 연구소 내에서 가장 수면 시간이 부족했던 센티넬이었다.
그렇다면 칸에게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비상 신호를 전했던 당시 연구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나아가서 센티넬들이 연구소에서 어떤 취급을 받으며 살아갔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또한 센티넬들의 능력이 발현되면서 동시에 그들의 불안정한 상태도 극심해진 고로, 그들의 물리적 특징 또한 함께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