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STID/존본즈] Crusin'

Jade E. Sauniere 2014. 3. 6. 19:54

- Star Trek Into Darkness, John Harrison/Leonard McCoy

- 퀄 별볼일 없음. 2014/03/03 

- Written by. Jade

 

Crusin'

 

 

  뭐라고 그랬더라, 시애틀의 노동자들이 몸도 녹이고 피로도 풀 겸 모여서 마셨던 커피가 세계를 주름잡은 스타벅스가 되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뭐 이제 와서 그런 기원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시애틀에 조금은 관광 명소같은 스타벅스 1호점이 그 모든 역사를 다 짊어지고 있을 뿐, 널찍한 지도 곳곳에 핀처럼 내리꽂힌 녹색 간판들이 기계적으로 현대인들의 혈중 카페인 농도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도만 들어봐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잘 알 수 있을 거다. 예쁘게 꾸미고 풀어서 말하는 재주는 없고 없는 말 지어내는 술수는 개나 줘버리지. 내 관점에서 그런 치장들은 실용적이지가 않다. 내가 굳이 쿠폰을 받아가면서 스타벅스를 찾았던 건 그게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커피 전문점이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바쁘고 힘겨운 세상, 조금이라도 실용적이여야 한다. 손에 들려 있는 서류들에 관심을 주기에도 급급한 30대의 생활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에도 랩탑이 들어 있는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스타벅스에서 제일 빨리 나오는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사실 아침이었으니까 스타벅스에 간 거다.

 

  하필 그 날에 야근을 하지 않아 기분이 좋았던 게 원인이었다. 화근… 이라고 말하려다가 그건 영 그 사람한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하여튼 그 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자기 전에 읽어야 할 거리도 없었고 오래간만에 내 가방에는 펜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한 달에 두 번만 찾아와도 운수대통이 분명하다는 그 빛나는 저녁에,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은은하게 빛나고 있던 글자가 있었다. 출근하는 길이 매번 달라지는 건 아닌데 솔직히 지각 안 하려고 눈썹 휘날리는 아침에 누가 주변 건물을 꼼꼼히 살피냐고. 덕분에 나는 그 날 문제의 간판을 처음 보았다. 아마 그 전에 생겼을 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아, 전에 얘기 들었었는데 그렇게 차이는 안 나고 대략 일주일 됐다고 했었나. 뭐 어쨌든 내가 모르는 커피집이었다.

 

  처음에 그 곳을 보고 내가 했던 생각은 간판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다는 거다. 독일어니까 그럴 수밖에. 뭐 그래도 나는 그 날 기분이 좋았고, 커피 한 잔 손에 쥐고 조금 느긋하게 걸으면 아주 괜찮을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참이었다. 이쯤에서 내가 그 곳과 내 단골집 스타벅스를 비교해보겠다. 절대 후자를 놀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조용히 있어봐, 다 얘기해 줄 거라니까? 그러니까 일단 그… 아, 진짜 아직도 이름 모르겠어. 아. 슈테판! 그 집은 모든 게 달랐다.

 

  해 뜬 무렵의 러시아워라고 할 수 있는 9시 직전 스타벅스 내부의 냄새는 조금 복잡하다. 남자들의 애프터쉐이브와 여자들의 향수 냄새가 적당히 섞여 있고, 회사에서 자고 온 사람들의 퀴퀴한 냄새 한 27%에다가 다들 일간지는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 신문의 맨질거리는 종이에서만 나는 냄새도 섞여 있다. 어쨌든 커피 파는 집이니까 커피콩 볶는 냄새도 난다. 설명만 들어도 나는 어지러울 것 같은데, 아닌가? 실제로 맡아 보면 굉장히 묘하다. 그 묘한 기분을 카페인으로 다시 뻥뻥 차내면서 오피스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게 시작이다. 

 

  슈테판의 향은 오로지 커피 냄새였다. 벽을 간간히 장식해 놓은 나무 액자에도 묻어 있을 것만 같은 진한 커피향에, 내부는 끊임없이 우유를 데우기 때문에 조금 따뜻한 기운도 풍긴다. 그리고 커피의 씁쓸한 냄새 아니면 페라가모 정도의 고급 향수를 써야 할 것 같은 주인장이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손님을 가라앉힌다. 빠르고 카페인이 가득한 스타벅스를 주창하던 실용주의자의 혈기가 조금 사그라들 수 있는 환경이란 말이다. 

 

  또 생각나는 게 있다. 뭐라고 간단하게 설명이 덧붙여져 있긴 한데, 도무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커피 종류들만 가득한 거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게 라떼였다. 이쯤에서 소시민들의 특성을 하나 말해주자면 사소한 것에 모험을 걸어 보고는 만족해하는 씁쓸한 습성이 있다는 거다. 나도 내가 모르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다. 사장한테는 도전 못 하잖아? 그래서 하나를 골랐다. 아직까지도 펑펑 놀림 받고 있는 그거, 바로 아인슈페너.

 

  손가락이 굵은 사람은 잡기도 아슬아슬할 것 같은 둥글고 자그마한 잔에 휘핑 크림이 잔뜩 올려진 걸 보고 나는 입을 떡 벌렸다. 게다가 아래에는 우유가 섞여 있는 것도 같고. 이건 대체 어디서부터 굴러온 건지 알 수 없어 물어보던 찰나에 그가 대답해주었다.

 

  "빈에서는 그런 커피를 마십니다."

 

  빈? 비엔나? 오스트리아의 수도? 그, 모차르트? 지금도 인상이 곱다고는 말 못할 그는 그렇게 말하고 흘러나오던 음악을 바꿨다. 가사가 있었던 노래가 지나가고 악기의 음이 적절하게 배합된 선율이 등장했다. 묘했다. 어쩐지 커피를 마시면서 그 음악을 같이 들으면 너에게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릴 거다, 라고 찻잔과 스피커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결과부터 말해주자면, 그 커피가 젠장맞을 정도로 맛있지만 않았더라도 내가 이런 주저리는 안 하고 있었다.

 

  일단 첫 번째 색다른 맛은 휘핑크림에서 시작되었다. 마치 치즈로 빚은 듯 풍부한 풍미와 매트한 질감을 자랑하는 크림은 내가 당분 떨어질 때 먹는 카페 모카의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스푼 위에 크림이 올라가 있는 걸 똑똑히 보고 있는데도 혀끝에서는 까망메르 치즈 같은 고급스러운 치즈가 돌아다니는 듯했다. 스푼을 깊숙히 넣어봤을 때 묻어났던 우유 거품은 입 안에서도 계속 은은하게 머무는 부드러움을 자랑했다. 아무 것도 자극적이지 않았고 유산균제를 털어넣으면서 위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맛이었다. 게다가 크림이 위에 잔뜩 올려져 있는데 달지도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커피라고? 이번에 그는 유창한 독일어 발음을 자랑했다.

 

  "아인슈페너."

  "예?"

  "당신이 마신 커피 이름입니다."

 

  나는 뭐라 군말을 중얼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슈타인 같은 이름이네. 그런데 맛은 되게 부드럽네.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카페에서 나는 또 물어볼 것이 있었다.

 

  "…여기 이름이 뭐에요?"

  

  그 이후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지 않는다. 카페 이름이 슈테판이라는 것도 알았고, 내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빈의 커피가 아인슈페너라는 것도 알았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남자 존 해리슨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와, 마지막 말 진짜 오글거린다. 더 듣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지 않아? 그래도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