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ar Trek Into Darkness

[STID/칸커크] Sense, Awakening

Jade E. Sauniere 2013. 12. 25. 12:47

- Star Trek Into Darkness, Khan Noonien Singh/James Kirk

- 느린 호흡으로 & 추상적인 뉘앙스에 유의. 

- Written by. Jade

 

Sense, Awakening

 

 

 

  강화인간의 기억이란 꼭 폐쇄회로 카메라의 녹화된 영상 같다. 그 의무적인 시선에서는 웬만큼 강렬한 색채가 아니라면 두드러지지 않고 모든 게 밋밋한 회색과 은색과 검은색을 천막처럼 덮고 있다. 그 안에는 소리도 없다. 명령이 섞인 짧은 통신은 일이 끝나고 나면 그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려 남아있질 않고, 얇은 장신구가 걸릴 수 있는 곡선들을 모두 침범한 소형 폭탄과 제어 장치에선 달칵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물론 강화인간의 일부는 인간인지라 그도 말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 속에 저장해두지 않는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했다. 컴퓨터가 사용하는 언어에 음향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강화인간은 전투를 많이 했다. 과학자들이 그를 만들 때 왜 굳이 인간이라는 형태를 고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구성만 뛰어나다면 가장 뛰어난 도구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몰랐다. 그는 300년의 공백을 천천히 붉고 탁한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전투의 흔적들을 돌이켜보았다. 그가 총을 쏘거나 가슴을 벨 때 그의 적은 분명 비명을 질렀거나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게 분명했음에도 그는 고정되지 않는 무기의 그림자를 제일 선명하게 기억했다. 뒤를 돌고 팔을 휘두르면서 그는 숫자를 헤아렸던가, 혹은 인간을 저주했던가? 데이터에는 생기가 없고 강화인간의 동력은 기계적이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일정한 간격에 맞춰 머리를 돌리는 감시 카메라처럼 고개를 움직였을 때 강화인간은 머리카락에서부터 흐르는 물줄기를 보았다. 색깔이 워낙 옅어져 있어서 그것이 약간의 분홍색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다. 옅은 색깔이다. 강화인간의 기억은 그것을 하나의 무채색으로 받아들이고 머리칼을 정교하게 씻은 뒤 흐르는 물을 잠갔다. 

 

  무채색의 하늘에 역시 무채색의 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태양이 맥을 못 추는 대신 인공적인 불빛이 활개를 치는 계절이었다. 네온을 넣은 온갖 모양의 빛들이 경쟁적으로 반짝거리는 모습이 창에 훤히 비치는데, 그의 시선은 마치 카메라 같아 자신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완전히 외면할 수 있었다. 그가 가운을 차츰차츰 내리고 옷을 찾으러 갔다. 존 해리슨이라는 인물이 한때 분노와 무료함 탓에 이리저리 손을 댔던 내부 시스템이 작동해 등불이 켜졌다. 강화인간은 가운을 소파에 내려두고 방으로 사라졌다.

 

  이 시대에는 문이 열리는 데에도 소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차분히 키패드를 누르고 안전장치만 해제시키면 되니, 두 발에 약간의 신중함만 입히면 아무도 모르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강화인간의 집에는 방범장치를 설치하는 게 불가능했다. 짙고 매끈한 실루엣은 덕분에 쉽게 안으로 들어왔다.

 

  침입자는 뻔뻔하게도 밖에서 묻혀온 하얀 입자들을 부드럽게 털었다. 다음에는 불을 켜 보려고 허공으로 팔을 휘저었다. 휙, 휙. 떨어지는 하얀 가루에서와 좌우운동을 반복하는 팔에서는 소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팔락거림만 일어났다. 그는 결국 불을 켜지 못했다. 침입자는 내부의 시스템이 갖춘 코드와 똑바르게 맞지 않았다.

 

  집의 주인이 옷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야 매입등들이 반응해 빛을 뿜어냈다. 강화인간은 막 팔을 내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무뚝뚝하고 냉정한 회로도 감지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샛노란 본연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는 금발이 눈썹을 올렸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요새 휴가철이거든. 알다시피 뭐, 연말이고 공휴일도 끼어 있고." 그는 머리의 눈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번엔 내 선언들이나 찬찬히 만나면서 휴가를 보내볼까 해."

 

  화면에 담기는 대상마다 공평한 눈길과 관심을 할당해주는 것이 본분이라는 기계의 렌즈는 뚝 꺼져버리고, 여전히 눈동자와 안구의 중간점에 걸쳐져 그 위치가 애매하긴 하나 청록 빛이 돌기 시작한 둥근 부분이 남자에게 다가왔다. 강화인간이 걷는 길목마다 불이 켜졌다. 

 

  나에게 더 얘기해. 또박또박 조합된 문장은 강화인간의 머릿속에서 테두리만 남길 뿐이었다. 그로 대표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은 카메라의 저장 장치가 책의 어느 한 면을 찍어 그것을 그대로 간직하게 되는 방식을 따른다.

 

  "…밖에 눈이 꽤 오더라."

 

  노래와 소리가 없던 공간에 제임스 커크의 목소리가 떠다녔다. 칸이 더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통로에 달린 불빛들은 벌써 희미해져갔다. 그 속에서 제임스 커크의 금색 머리칼은 명확했다. 나를 위해 울어. 칸의 감각에서는 그 자신의 목소리가 잡히지 않는 게 맞지만, 사실 보통 인간들의 오감을 가지고 있는 커크도 귀를 통해 칸의 말을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커크는 칸을 위해 밝게 울었다. 

  

  그 날에 인간들의 신도 숱한 찬양들 속에 태어나고, 강화인간의 진정한 시스템도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