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lock/셜록존] Concept of Individual 02
- BBC Sherlock, Sherlock Holmes/John Watson
- Written by. Jade
02.
누구든지 허락받지 않은 곳에 있으려면 조력자가 필요한 법이다. 스스로 유령이 된 셜록 홈즈는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마치 산 사람처럼 넘나들기 위하여 마이크로프트의 도움을 받았고, 그가 소리 없이 내쫓고 다니는 악당들에게 최대한 엄한 처분을 내리기 위하여 한 사람의 도움을 더 받고 있었다.
빈 의자에 지관통을 뉘어 놓고 그것을 노려보고 있던 셜록은 자신의 시야 안에 끼어든 손가락에 고개를 올렸다. 넥타이도 풀고 그럭저럭 딱딱한 색을 피했다곤 하더라도, 셜록의 눈에는 특수 요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가 지관통을 셜록에게 넘겨주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나쁜 놈 하나 잘 받아 가요.”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소탕 작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려면 적어도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알베르트 디트리히는 그런 기본적인 사항을 바탕으로 홈즈 형제가 추려낸 인터폴 요원이었다.
그는 점잖은 이탈리아인과 냉소적인 독일인의 영역에 모두 한 발을 걸친 듯한 외양을 갖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겉모습을 자신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일처리는 확실한 엘리트였고 셜록도 그가 범죄자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럭저럭 만족해했다.
셜록의 눈썰미에 들어온 까만 차량 한 대가 거리를 빠르게 벗어나는 모습이 들어왔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진척 상황을 알아서 판단하는 탐정은 알베르트를 어떤 점에선 편하게 만드는 상대방이었다. 셜록이 뒤편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자 알베르트는 최근 오를레앙에서 인도 받았던 흉악범들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설명했다. 그것은 셜록 홈즈가 내건 첫째가는 조건이기도 했다.
셜록은 말을 덧붙이는 경우 없이 고개를 까딱하거나 눈빛을 지었다. 인터폴의 수배를 받던 이들에게 떨어진 단죄를 마치 칼럼을 소개하듯 부드럽게 풀어낸 알베르트는 카페의 종업원이 채워준 커피까지 챙겼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언제 다시 부활하는 겁니까? 포상도 살아 있는 사람한테 줘야죠.”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우리 측에서는 많은 이득을 얻었습니다. 답례를 해 줄 수는 있어요.”
셜록은 가만히 탁자에 늘어놓은 자료나 집어넣으라고 눈짓했다. 그간의 경험이 알려준 바가 있어 알베르트는 괴팍한 탐정의 요구를 가급적 성실히 이행했다. 셜록은 포스터나 유화 그림이 들어있을 것 같지만 유령의 기록이나 다름없는 지도가 있는 통을 팔목에 걸쳤다.
“…이게 끝일 것 같습니까?”
“9할 정도는.”
“그건 무슨 뜻입니까?”
“그만큼 확신하지만 또한 만일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알베르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이승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셜록 홈즈의 천재성은 인터폴이 보증해주도록 하지요.”
인터폴 요원은 커피 잔을 마저 다 비우고 일어섰다. 친히 첫 만남의 중개인이 된 마이크로프트를 사이에 두고 셜록과 만났을 때, 죽은 사람과 악수를 나누는 불길한 경험을 하고 싶냐는 폭언을 기억하는 그의 입에서는 통상적인 인사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다만 미소를 보냈고 셜록은 조용히 눈동자를 돌렸다.
⁂
베를린에는 더 이상 셜록 홈즈를 머물게 할 만한 요인이 없었다. 런던에서 얼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기만 하면, 셜록은 두 달을 채우지 못한 베를린의 작은 아파트를 떠날 것이었다. 문을 연 그가 대개 싸늘했던 임시 거처로 들어갔다.
런던의 베이커 가에서도 온갖 잡동사니들을 담당했던 장본인으로서의 기질은 여전해서 집안의 곳곳에서는 물건들이 쌓여 있거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종이와 책, 신문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머그컵이나 색깔 있는 사인펜 등이 얼핏 보였고 몰리 후퍼가 지적했었던 머플러가 소파의 벗겨진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셜록의 아파트는 썰렁함을 견디다 못한 존이 안에다 채워 넣을 책을 사러 나가야만 했던 런던의 플랫과는 전혀 달랐다. 셜록은 벽면으로 다가가 단 한 사람을 위해 펼쳐두었던 큼직한 도화지를 거둬들였다. 종이가 푸스스 바닥으로 주저앉는 소리가 났다.
그는 불도 키지 않고 소파에 누워 버릇처럼 생각을 했다. 머플러가 놓여 있던 자리에 어깨를 붙였는데도 찬 기운이 느껴졌다. 셜록 홈즈는 또 다시 자신의 목적지를 고민했다.
⁂
“잘 가요, 몰리.”
겉옷 안으로 들어간 머리카락을 바깥으로 빼내며 몰리가 웃었다. 당직을 피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밝은 법이고, 몰리 또한 밝은 모습으로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몰리가 사라지자 한 여자가 실험실에 남았다.
당직은 서야 하지만 급한 일이 없었으므로 여자는 핸드폰으로 음악부터 틀기로 했다. 시신을 안치해 두는 방이 거리상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는다는 점은 여자를 조금이나마 불편하게 하는 요소였다.
유명 여가수의 목소리가 한 차례 지나갈 무렵 실험실까지 전해지는 종소리가 있었다. 여자는 놀라서 대뜸 음악부터 껐다. 달랑달랑, 종소리는 다시 났다.
“웬 손님이람.”
성 바스톨로뮤 병원에 남아 있는 병동은 노인들을 위한 곳이라 보통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긴급히 오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여자는 방문객들이 다른 용건이 있어 병원에 찾아온 것으로 추측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과연 그들은 환자가 아니었다.
“더 선의 키티 라일리라고 해요. 이쪽은 제 동료고요. 취재 관련해서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하는데요.”
바스톨로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접하는 레퍼토리였다. 여자가 카운터로 들어갔다.
“네, 뭘 도와드리면 되죠?”
“여기에 안치된 시신 한 구를 보고 싶어요.”
“…근래 새로 들어온 시신은 없는데요?”
“죽은 지 1년도 더 됐으니까요. 가능할까요?”
이상할 건 없었다. 시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형사 아니면 기자들이었다. 여자는 서랍에서 장부를 꺼내려고 팔을 아래로 뻗었다가 키티 라일리의 뒤쪽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그녀를 부드럽게 재촉했다.
“여기에 이름이랑 오신 날짜 적으세요.”
남자는 바스톨로뮤의 근무자에게 어딘가 굳은 웃음만 짓고 다른 일은 하나도 거들지 않았다. 키티 라일리가 장부에 필요한 사항을 기입했다.
“안치소는 저희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 일 보세요.”
“라일리, 우리끼리는 그 안에 들어가질 못하잖아요.”
병원에 들어와서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은근히 다급해 하던 기색은 어디로 씻겨 내려갔는지 남자는 허리를 살짝 구부리는 제스처까지 선보였다.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표정을 살펴보니 키티 라일리에게로 그의 불편함이 옮겨간 듯 했다.
남자는 맨 처음엔 신사적인 동작으로 바스톨로뮤의 직원과 여기자에게 길을 양보하느라 뒤쳐져서 걸었고, 안치소로 들어갈 때에는 문을 대신 닫아주느라 뒤편에 있었다. 문이 닫히자 직원이 카드키로 풀어 두었던 센서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남자는 그것까지 확인하고 가장 마지막에 안으로 들어와 자켓 주머니 속에 손을 감추었다.
“이름이?”
“리처드 브룩이에요.”
키티 라일리는 모종의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여자의 옆에 붙어서 그녀의 행동을 꼼꼼히 따라갔다. 남자는 발을 옮겨 라일리의 얼굴이 잘 보이는 방향에 섰다. 곧 바스톨로뮤의 직원이 서랍 하나를 열었다.
“이 분이 맞으신가요?”
라일리가 순간 남자를 보았다.
“네, 맞아요.”
직원이 두 손으로 힘차게 서랍을 끝까지 빼냈다. 회색 비닐에 담겨 있는 시신은 방금 라일리가 신원을 확인하느라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남자도 시신을 보기 위해 걸어왔다. 자켓의 주머니만 거쳤을 뿐인 그의 손에는 얇은 주사기가 있었다.
삽시간에 바늘을 찔러 넣어 여자를 잠재운 그는 화들짝 놀란 라일리를 뒤로 하고, 여자의 두 팔을 정중하게 받아 올려 옆에 앉혔다. 라일리의 양 볼이 공포감으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검사실로 올라가지.”
그것은 분명히 명령하는 말투였다.
밤이 지나서 출근한 몰리는 그 때까지도 안치소에서 잠들어 있는 동료와, 리처드 브룩의 일부가 사라진 것을 알고는 비명을 질렀다.
⁂
시작점은 성 바스톨로뮤 병원 안에서 동료를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몰리가 약물을 맞고 잠든 여자를 발견하고, 완전히 닫히지 않은 서랍을 열어 비닐의 지퍼를 내리는 감시 카메라 영상이었다. 밀착 확인의 대상이 되는 영상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담당자는 곧바로 이것을 상부로 보냈다.
영상을 보낸 사람이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밀착 확인’이란 표현을 이해하고 있는 상급자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날쌔게 수화기를 들었다. 그는 포스트잇 더미를 휘저으면서 그동안 신경도 쓰지 않았던 파란 종이 한 장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거기에는 그가 한 번도 연락해 본 적 없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문제의 번호는 이전에 튼튼하게 구축해 놓았던 미로 같은 경로를 통하여 사용자에게 소식을 전달하였다. 통화를 끊고 안시아는 훈련 받은 듯한 속도로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10분도 걸리지 않아 영국을 벗어나 있는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성 바스톨로뮤 병원에서 리처드 브룩의 머리가 도난당했음을 보고받았다. 이후 마이크로프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한 가지였다.
“셜록, 할 얘기가 있다. 지금 당장.”
⁂
마이크로프트가 셜록을 호출한 장소는 공항 근처였다. 택시에 올라탄 직후에 장소를 전달 받은 셜록은 챙겨 놓은 짐을 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한 짜증을 마이크로프트에게 쏟아내려다, 이 순간 자신의 형이 그 정도의 너그러움도 발휘하지 못한 상태라는 걸 파악했다.
“무슨 일인데.”
“누군가가 리처드 브룩의 시신에 손을 댔다는구나.”
셜록이 희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머리가 없어졌다고 해. 일단 내가 받은 정보는 거기까지인데, 그 외 다른 일들도 같이 벌어졌다고 추측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몰리는?”
“후퍼 양은 괜찮아. 다행스럽게도 후퍼 양이 첫 목격자라서 아직까지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은 것 같다. 리처드 브룩이 갖는 의미가 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리처드 브룩이 제임스 모리어티임을 의심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인 몰리는 셜록에게 비상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수단조차 갖지 못했으면서도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해내고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시계를 한 번 보고 말을 이어갔다.
“너라도 영국으로 가보는 게 좋을 거야. 안타깝지만 나는 먼저 약속된 일이 있어서 미국으로 가야 하거든. 15분 안에는 비행기를 타야 돼.”
반사적으로 마이크로프트의 의견에 반발하려던 셜록이 멈칫했다.
“미국에는 뭣하러.”
“요새 그 나라가 말썽이 많잖아. 그 놈들이 우리 몰래 뭘 엿들었는지는 확인해야지.”
다음 행선지로 동유럽을 염두에 두고 있던 셜록에겐 무언가가 어긋나는 일이었고, 더 뚜렷하게 표현하자면 아직 그가 준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셜록 홈즈의 대리자로서는 제일 믿음직한 그의 형은 천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네 최종 목적지는 런던이잖니.”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크로프트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셜록은 다시금 자신이 짐을 챙겨 오지 않은 것에 신경질을 냈다.
⁂
미국으로 떠난 마이크로프트와 아직 독일에 남아 있는 셜록 그 모두와 한참은 동떨어져 있는 플랫에서 존은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넉넉하게 채워 두었으며 창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했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의 콘센트를 뽑아 놓는 세심함까지 발휘했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전보다 훨씬 평안해진 존 왓슨은 사소한 데에도 신경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체크한 것은 옷차림이었다. 존은 곧 만나러 갈 여인에게 나름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녀들이 기죽은 눈동자로 자신을 비교해보게 될 대상은 런던의 묘석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었고 존은 침착하지만 진실하게 파트너를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존은 몇 번 더 거울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존은 무의식적으로 셜록 홈즈가 자신의 옷에 대해서 이것저것 품평을 늘어놓았던 걸 되새겼다. 셜록은 존이 옷차림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에 따라서 존이 데이트에 임하는 자세를 추측해 내곤 했다. 존은 셜록이 짚어냈던 세부사항과 얼룩과 색깔을 다 떠올릴 수 있었지만, 오늘은 봐줄만 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만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존은 메리 모스턴을 만나러 집을 나갔다.